2008년 10월 20일
금융투기의 역사 : The Great Depression
7. the Great Depression & 잡다한 이야기들
For John Templton : 영어에서 가장 값진 네 단어는 "This time is different"이다. 이번에는 달랐다...다우지수는 고점을 기준으로 90% 이상 폭락하였다.
- "투기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인들과 은행가들은, 현재의 번영이 더 큰 번영의 시작이기 때문에 영원할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는 말로 새시대 관념을 설명했다.
* 장기투자수단으로서 보통주(1924) :
에드거 로렌스 스미스는 보통주들이 투기의 수단이었다는 생각은 그동안 미국 증시역사를 살펴볼 때 일면 타당하다"고 하면서도, 이는 "장기보유를 목적으로 주식을 사는데 따른 위험을 과장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19세기 주안 이후 주식과 채권의 수익률을 인용했다. 그리고 "주식의 수익률이 채권을 능가했고, 특히 20세기 들어 20년 동안 펼쳐진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주식의 수익률이 더 높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고점에서 주식을 샀을 때에도 투자 원본을 회복할 수 있는 순간은 꼭 온다"고 강변했다. 또 주식 투자자가 원본손실을 입을 확률이 15년 동안 1%도 되지 않았다고 목청을 돋우었다. 그리고 새시대의 여러 담론을 동원해 주식투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새시대에는 경영자들이 주주의 이익을 더 반영하게 되었고, 각종 투자기법들이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 미래가치뿐만 아니라 저승의 가치까지도 할인한다:
새시대에는 밸류에이션 방법도 바뀌어야 했다. 적정 시가총액은 기업수익의 10배이고, 배당금은 채권수익률보다 높아야 한다는 구시대 가치측정방법은 과감하게 폐기되었다. 대신 미래수익을 현재가치로 할인하는 방법이 도입되었다... 이 가치측정 방법은 불확실한 미래수익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투기적이다.
1920년대 사람들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1929년 뉴욕 증시에서는 "미래가치뿐만 아니라 저승의 가치까지도 할인한다"는 말이 유행했다..요즘 증시에서는 내재가치를 근거로 주식을 살 수 없다...특히 새시대의 장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기 때문에 불황발생 가능성은 그들에게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이는 할부거래와 같은데, 눈앞의 만족을 위해 미래를 과감하게 소비한 셈이다.
* 인지부조화론 : 주식투기가 가져다주는 초단기 수익을 위해 사람들은 불길한 정보를 무시하려고 한다. 손실의 두려움이 수익에 대한 탐욕보다 커지는 순간까지 투자자들은 인식의 부조화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뎌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운명의 순간이 1929년 9월 3일 찾아왔다.
* 건물높이지수(erection index) : 경제학자들이 희화화하곤 하는 index. 새로 세워진 빌딩의 높이가 기존 건물보다 높은 때를 증시의 고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신뢰성이 있는 지수로 최근 밝혀졌다.-> 조사해 볼 것.
* 한편 케인즈는 투기에 대한 치유책으로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주장했다.
* 90년대와의 비교 :
- 인프라 : 1920년대 후반 증권사 지점망이 급속도로 확대되어, 1928~1929 사이에는 약 600개의 지점이 개설되었는데 이는 80%의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1920년대 투신사의 증가율은 1990년대 뮤추얼 펀드 증가율에 비하면 아주 낮은 것이다. 19990년 1100개이던 뮤추얼 펀드가 97년에는 6000여개로 늘어났다. 뮤추얼펀드 수탁고는 1997년 말 4조 2천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미국 전 은행의 자산합계와 맞먹는 규모다. 이렇게 급신장한 뮤추얼펀드가 증시호황을 떠받치고 있는셈이다. 따라서 개인들이 노후생활을 위해 저축해놓은 돈을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증시의호황이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1920년대 : "증시는 한 가정의 재산을 모두 건 사람들이 10%의 수익을 얻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훌륭한 카지노".
1929년 1월 Worl's Work : 도박에서는 누군가가 손해를 봐야 이익이 발생하는 데 비해, 투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승자이다.
1990년대 James Grant : Buy and hold가 영어에서 가장 대중적인 세 단어 I love you 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 1990년대와 1920년대 투자자들은 주가하락을 '저점매수의 기회'로 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떨어지던 주가는 곧 회복했고, 투자자들은 증시를 '불침항모'(invincibility)로 인식하게 되었다. 1997년 10월 27일, 아시아증시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우지수가 하루아침에 7% 폭락한 이날, 미국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은 폭락사태가 발생하자 1929년에 허버트 후버가 했던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굳건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폭락한 틈을 이용해 주식을 사들이는 인파로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는 5% 이상 반등했고, 거래량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후 6개월동안 다우지수는 폭락했던 10월 27일을 기준으로 25% 상승했고, S&P 500지수는 이후 1년동안 50% 이상 치솟았다.
1990년대 미국 증시가 초호황을 누리자 1920년대 유행했던 새시대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패러다임'과 '안정된 경제'라는 말로 부활했다. 증시가 경기순환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빙 피셔가 살았던 1920년대의 새시대 이데올로기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이다.
1929년대와 1990년대 호황의 유사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식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 평가 기준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첨언: 지금 읽고 있는 광기, 패닉의 역사에서는 대공황이 긴 침체를 유발했던 이유에 대해 정부 단위의 구제금융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함. 향후 29년, 87년, 90년 후반의 사례에 대해서 비교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음ㅋ.
8. Cowboy Capitalism
* 브레턴우즈 시스템 : 금본위제 부활 대신 금태환 탈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여타 통화를 달러에 고정환율로 묶어두는 데 합의(1944).
금 1온스당 35달러 결정: 17c 후반 1차 금융혁명기에는 그래도 모든 가치가 금에 의존했다. 따라서 금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투기제어장치로 기능했다. 지금은?
*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금융시장이 더 안정되고 투자행태가 더 효율화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줄 만한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는 쉽게 발견된다. 역사적으로 금융정보의 폭넓은 이용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투기의 세계로 새로운 참여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낳았다. 1세대 일간지의 출현과 맞물려 사우스 시 버블이 발생했고, 영국 신문들이 금융시장 지표를 싣기 시작한 1825년 광산회사 투기가 벌어졌다. 또 철도가 건설되었던 1845년 철도버블이 부풀어올랐고, 주가표시기가 도입된 1870년대와 라디오가 출현했던 1920년대 미국 증시에도 투기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워렌 버핏의 말 : "시장이 '심심치 않게' 효율적인 양상을 보일 뿐인데, 시장주의자들은 '항상'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 과거에는 파생상품거래와 도박을 구분하는 법적 장치들이 존재했다. 만기 결제일에 현물을 서로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도박은 만기일에 차액을 현금으로 결제한다... 그러나 이자율은 만기일에 인도될 수 없기 때문에 차액을 돈으로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부터 5년이 흐른 1981년 현물인도가 불가능한 이자율 선물거래가 합법화되었다.
* 프리드먼's student: 대처 & 레이건.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은 바람직하지 않고, 시장의 판단이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데 합의함. 글래스-스티걸 법의 적용도 느슨해졌다. 그들은 이윤추구를 혐오했던 케인즈주의자들의 논리를 거부하고 개인의 이윤추구를 정력적으로 옹호하기 시작했다. 레이건의 말이 대표적이다 :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것은 미국이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로 남는 것".
* 정크본드 :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을 '추락한 천사'로 부르며, 부도율보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주장...차입매수 붐은 1980년대 중반 미국 증시활황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전통적인 기업가치 평가방법이 의미를 잃고, 인수합병 가치가 중요한 기업가치평가수단으로 등장했다. 현금흐름이 얼마나 좋고, 어느 정도의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따라 기업가치가 달라진 것이다. 차입매수꾼들이 기업을 인수할 때 인수에 들인 차입금을 원할하게 상환할 수 있는 기업이 높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 1987년의 폭락 :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한 트레이더는 자리를 버리고 은행으로 달려가 예금을 인출한 뒤 포르셰를 몰고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
월, 화 급격한 지수추락이 발생했지만, 시장이 평상을 되찾아 증시는 급격하게 반등하기 시작했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은행의 붕괴사태를 막기 위해 시장의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을 쏟아부었다. 주로 재무성 채권을 사들여 120억달러의 자금이 시장으로 흘러들어가게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재무성 채권수익률은 0.75% 떨어졌지만, 은행들은 이돈 가운데 70억달러를 주식투자자들에게 대출할 수 있었다. 또한 백악관이 대기업 총수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사주를 매집하도록 촉구하자,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선언이 줄을 이었다.
1987년 연말을 기준으로 투자자들은 역사상 가장 급격한 증시 대폭락을 경험하고도 소폭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1987년 미국 증시 대폭락으로 1조달러에 가까운 돈이 공중으로 증발해버렸지만, 이해 공황은 29년과는 달리 경제공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경제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1987년의 호황은 소매시장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증시에서만 발생했기 때문에, 증시 대폭락이 미국민의 신뢰와 소비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경제학자 앤드루 스미서스는 좀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실제 주가가 고평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1987년 증시 대폭락이 경기침체를 유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효율적 시장론자들은 투기적 붐과 증시 대폭락이 경제 대공황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로 1987년 증시 대폭락을 들고 있다.
* S&L 그리고 붕괴
근검절약의 동의어였으며 S&L로 불린 대부조합은 미국 일반가정을 상대로 담보대출을 해주는 곳이었다...
예대 역마진 발생: 이에 대한 레이건 행정부의 처방은 아주 고단위 규제완화였다. 모든 S&L이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한 여수신업무의 한계를 벗어나, 월스트리트에도 자금조달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버린 것이다. 대신 연방예금보험공사가 개별S&L 예금에 대한 보장을 10만달러까지 확대했다.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레이건은 "홈런을 친 기분인데!"라고 코멘트했다.
S&L의 회계규정도 크게 변했다. 대손충당금을 쌓지 않고도 부실채권을 팔아치울 수 있게 된 것이다...과거 S&L의 신뢰성을 담보해준 각종 회계규정이 모두 제거된 셈이다...한때 견실했던 S&L 매니저들도 순식간에 투기꾼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위험을 알리는 경고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헤지는 계집애 같은 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응수하는 매니저도 있었다.
여기서 또 워렌 버핏의 말 : 연금술은 그 대상이 쇠든 돈이든 모두 실패했다. 어떤 기업의 기본적인 영업이 회계나 금융구조를 변경시킨다고 해서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바뀌는 게 아니다.
* 1987년 대폭락 이후 시장이 빠르게 회복되자 투자자들은 바이 앤 홀드 전략이 유효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또 주식시장의 폭락이 경제공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대신 '골이 깊을 때 주식을 매수해' 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다. 또 달리는 증시가 고속으로 충돌할 때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출동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었다.
...몇년 뒤 1987년의 대폭락은 사자의 머리와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키메라가 탄생하는 것만큼이나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수학적으로 단순화시킨 재발 가능성은 10^160분의 1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한 인간이 200억년 동안 살아야만 경험해볼 수 있는 사건이고, 이미 한번 경험했기 때문에 재발할 가능성은 0"이라는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이 글을 쓴 시점은 90년대 말로 닷컴버블이 나오지 않았던 때이다 ㅋㅋㅋ)
9. Kamikaze and "Lost Decade"
대규모 투기는 경제적 힘의 균형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 발생한다.
* 1986년 미쓰이 물산은 6.1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가격으로 뉴욕 맨해튼에 있는 엑손빌딩을 사들였다. 당시 미쓰이 회장은 기네스북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애초 엑손쪽에서 부르는 값보다 2.6억달러를 더 지불했다고 전해졌다.
일본의 자본자유화: 이는 미국의 압력에 따른 것만은 아니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무역수지 흑자와 높은 저축률 때문에 남아도는 자본을 해외에 투자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본자유화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 차익거래 : 일본 기업들은 앞다투어 BW를 발행했는데, 엔화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이용해 달러표시 BW를 발행한뒤, 이 채무를 스왑시장에서 엔화표시 채무로 스와핑해 엔화자금을 일본 내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치가 하락하는 달러 대신 상승하는 엔화를 조달해 만기시점에서 환차익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자금조달과정에서 마이너스 이자를 지불했고, 더 나아가 조달한 자금을 주식시장에 쏟아붓거나 투금계정에 투자해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 KODEX CHINA H의 투자 방식과 견주어 볼만 함.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간동안 일본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는 사실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시아의 땅귀신'이라고 불린 철강회사 한와는 재테크를 통해 4조엔에 달하는 돈을 굴렸으며, 여기서 얻은 수익이 본업으로 얻은 이익의 20배를 넘기도 했다. 일본의 땅값은 1956~1986년 사이에 50배 이상 치솟았다. 반면 일본의 소비자물가는 단 두배 뛰었을 뿐이었다. 이 기간동안 땅값이 하락한 때는 단 1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일본에서 땅은 신용의 상징이었고, 이 때문에 토지본위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치명적인 약점 : 토지의 절대면적이 늘어나지 않는데 은행권 발행을 늘리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경향이 있음.
* 플라자 합의 : 이에 따라 각국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에 나선 다섯달 뒤인 1986년 1월, 1달러당 엔화환율이 259엔에서 150엔으로 떨어졌다. 엔화강세에 따른 불황이 덮쳤다. 다급해진 대장성은 재할인율을 인하에 3%에 이르게 했다. 매년 10%에 달하는 총통화 증가가 소비재 가격상승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대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 1980년대 후반 섬유업종의 P/E는 103배에 달했고, 서비스주들은 112배, 해상운송 주들은 176배, 어업관련 종목들은 319배까지 뛰었다. 또 당시 민영화 과정을 밟고 있었던 JAL의 주식은 P/E 400배 수준에서 매각되었다.
- 1990년 일본 전체 부동산 가치는 2,000조엔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는 미국 전체 땅값의 4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 사정이 이쯤되자 도쿄대 경제학자들은 Tobin's Q를 부활시켰다. 1988년 기업들의 자본이득과 '숨겨진 자산가치를' 계산해보니, 장부상 가치보다 434조엔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 PER 무시하는 경향: PBR이 낮으니까 괜찮아!
이에 따라 엄청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도쿄전기의 1986년 시가총액은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의 전체 시가총액보다 커졌고, 또다른 랜드플레이인 전 일본항공(JAL)의 주가수익배율은 1,200배까지 날아올랐다.
결과 : 1992년 8월 닛케이지수는 최저점인 1만4300까지 밀려났다. 89년 12월 최고점과 비교하면 60% 하락한 것이다.
한편 설비투자도 버블이 가라앉자 과잉투자로 드러나면서 극도로 위축되었다.
시사 : 일본의 사례는 투기가 얼마나 전염성이 강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본처럼 경제가 강력한 규제 아래 있다 해도 자본시장에 조그마한 자유만 있어도 버블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달러와 같이 특정통화에 자국환율을 묶어두는 나라는 투기꾼들의 좋은 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특정통화에 자국의 환율을 묶어두는 나라만이 외환투기꾼들의 집단적 공격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Paul Krugman은 엔-달러 환율의 급락과 급등은, 환투기꾼들이 일본의 거시경제 상황보다는 환율변화의 모멘텀을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엔화 강세는 일본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바람에 일본 경제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겼다. 조지 소로스는 변동환율제 아래서는 투기꾼들의 힘이 갈수록 강해진다며, '투기는 본질적으로 기술적 매매이기 때문에 환율의 변동폭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인정했다.
10. 굿바이 롱텀 캐피탈
옵션에 대한 앤드루 스미서스의 말: "옵션 거래가 잠재적인 유동성 부족을 무시하고 거래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된다고 볼 수 없다."
* 무역과 재정의 쌍둥이 적자를 견디지 못한 러시아가 1998년 8월 단행한 루블화 평가절하는 헤지펀드 매니저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서방국가들이 러시아라는 '대마'가 망하는 것을 가만 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러시아 채권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채권이 휴지조각으로 변하자, 채권자들은 헤지펀드에게 꿔준 마진론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궁지에 몰린 헤지펀드들은 앞다투어 각국 증시에서 사들였던 자산을 처분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러시아 채권의 디폴트 여파가 전세계로 파급되었다.
* 롱텀 캐피털의 차입금 비율은 1만%를 넘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현대 파생상품 시장의 핵심 논리인 숄즈와 머턴의 옵션가격 결정공식도, 과거의 가격변동이 미래에도 같은 파동을 기를 것이라는 논리에 의존한 것이다. 이는 마치 백미러만 보고 오토바이를 몰고 질주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한편 UBS는 롱텀캐피털에 6.8억달러를 꿔주고 전액 손해를 보았다(흐흐흐)
# by | 2008/10/20 23:05 | 트랙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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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확천금의 꿈과 참혹한 불황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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