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12일
글씨
회사에서 합성 노트를 적다가 2과 형이 적은 노트를 보았다. 공부를 거의 안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형이지만 글씨를 나보다 잘썼다. 형 글씨 잘쓰네요. 얌마 나 못쓰는 편이지. 근데 너보다는... 나은거 같다.
썩기분이 좋진 않지만 사실이었다. 일단 나는 공책에 평행으로 쓰질 못한다. 쓰다보면 아래로 가라앉거나, 위로 부유하거나.
지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초딩 시절엔 일기 쓰는게 너무 싫었다. 일주일에 세편 이상씩 썼는데 두편을 동시로 채웠던 기억이 난다. 6학년 때 선생님은 동시를 거절하셨다. 나는 불쾌지수를 높여가며 일기를 써갔고 나의 글씨체는 읽는 사람의 불쾌지수를 높였고 급기야는 선생님이 글씨를 못읽겠다며 수업 끝나고 남아서 일기를 다시 쓰고 가라는 방과후지도까지 몸소 실천하셨다.
나는 선생님이 굉장히 원망스러웠다. 내 딴에는 굉장히 노력해서 쓴 건데 어쩌란 말인가. 다시 쓴 일기를 본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셨고 그 방과후 지도는 일주일 정도 지속되었다. 나는 다른 것보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공차고 있는 시간에 선생님과 남아서 거기서 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연습을(그것도 난 육학년이란말이다)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글씨를 잘 쓰고자 노력했다.
중학교때 큰맘먹고 하이테크 열몇개를 싸서 글씨를 열심히 썼다. 나중에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또박또박 글씨쓰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 필기를 하고 내가 쓴 필기를 보며 만족했다. 물론 친구들은 전혀 내 노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난 꿋꿋했다.
하지만 이모양이다.
고딩때 엄마는 나 글씨 잘쓴다고 칭찬해 주었다. 나는 고슴도치도 지자식 함함하다고 하는데 지금 딱 그런 케이스인가 생각하며 엄마의 진실성을 의심했지만 진심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가끔씩 내 노트를 빌려가기도 했지만(도대체 왜???) 이내 몇번씩 이거 뭐라고 쓴거야 물어보더니 그냥 공책을 돌려주기 일쑤였고 뭐 어차피 내가 볼거 나만 잘읽으면 되었지 하는 생각으로 여태까지 살아왔다.
과장님은 최소한 너는 남의 회사사람들이 와서 자료 빼가도 알아볼 수가 없을테니 걱정이 없겠다고 말한다. 욕인지 칭찬인지 구분이 잘 되지만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괜찮다 이젠 왠만한 건 다 컴퓨터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면 글씨가 최소한 뜨거나 가라앉지는 않잖아. 예쁜 글씨체도 많고. 색깔도 넣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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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7/12 20:58 | 넘실넘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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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보다 훨씬 글을 이쁘게 쓰는 저는 그런 감칠맛 문체따윈 쓸 줄 모르는 무미건조한 사람인 편이죠. 아무래도 글씨가 이뻐야 마음도 이쁘다는 옛 말은 정말 옛 말인 듯. 글은 읽어보면 알 수 있잖아요? ㅎㅎ
여러가지 창의적인 글씨체를 생산해내는 유아들을 존중하는 교육이 행해질 날은 언제인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