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

보스턴 리걸의 에피소드들은 항상 발코니 씬으로 끝을 맺는다. 자기 이름만 연신 외쳐대는 데니 크레인과 선과 악의 (자기) 구분이 뚜렷한 앨런 쇼어가 시가를 물고 위스키를 먹으며 에피소드를 정리하며 잔잔한 대화를 나눈다. 그 씬은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술과 담배를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자극이자 욕망이라는 느낌이 든다. 바쁜 일을 끝내고 자신만의 시간을 동지와 나누는 여유.

그 씬을 볼 때마다 오픈 한달 차, 리츠칼튼으로 다같이 워크샵을 빙자한 뒷풀이를 갔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게 언제더라? 9월 말이었나. 하늘이 보이는 발코니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 나란히 앉았을 때 그 기분이란. 지난 두세달 동안 바쁘게 보내왔던(그러나 옷걸이에 옷을 걸어 옷장에 넣는 것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지는 못했던) 시간들이 가슴 언저리에서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애인님이랑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런 시간 - 한적한 여유 - 를 우리들과 다시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워크샵이라는 스케쥴(?)에 걸려 맘 편히 쉬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예민해져서 사소한것 하나 하나에도 감정이 부딪히던 시기, - 지금은 그런 부딪힘에 서로 피로감을 한가득씩 안아 아예 찔러보려 하지도 않는 단계지만 - 엉킨 실타래를 싹둑 끊어내진 못했지만, 워크샵도 중간에 쓰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5분이나 되었으려나, 발코니에 앉아서 사실 건물 그리고 밤하늘 외에는(강남역에 뭐가 있겠나) 아무것도 없던 밖을 내다보던 그 찰나의 시간만으로 나에게 그 괴상한 1박2일은 가치있었다. 뭔가 뭉클했고, 행복했다. 그 포만감은 아직까지도 그 몸 한구석에 남아 있다. 진지한 대화가 오간 것도 아닌, 그냥 쿠션이 있는 비치의자에 누워 실없는 몇마디를 주고받고 별이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가을 모기에 공격당해 방으로 후퇴한 시간이었는데. 그 모든 조합은(어쩌면 모기들마저)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에 갈 때 숙소에도 발코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땐 꼭 에이블을 넘어 나를, 너를 , 우리의 삶을 조망하리라. 머리아픈 일은 묻어두고 동지애를 마음껏 발휘해보리라. 푹 쉬고, 재충전하고, 뇌하수체 저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은밀한 생각들을 끄집어내고, 한데 뒤섞고 터뜨리고 날려보내리라. 나를 찾으리라. 

by 골드문트 | 2009/11/11 12:10 | 넘실넘실 | 트랙백

September Ends

9월은 참 싱숭생숭하다 - 라고 첫마디를 시작하고 보니 매년 9월마다 감정의 진폭이 컸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린데이의 노래를 들으며 휘갈겼던 매년 9월의 '격한' 글들이 하나씩 있을 거다.

미운정 고운정 들었었던 형들 두명이 회사를 그만둔다. 카페에선 이제 겨우 7주인데 한명이 연을 놓는다. 약간 이런 느낌이다. 나는 그대로 있고, 나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와 맞지 않는 혹은 각자의 속도 때문에 스쳐 지나가게 되는 인연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스물다섯이면 이제 어른쯤 된다. 현실은 웃음 가득한 공간일지라도, 저들마다의 삶의 고민은 누구도 대신 져주지 못할 것이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결정도 자신의 삶을 건 고민 끝에 나온 선택일 것이다. 나로서는 알지 못하는 현실의 무게를 그녀는 지탱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냥 그런 거. 나는 나의 관점으로만 타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좀더 떨어져서 그들에게 공감해주지 못한 것 같다.

alice's calling

완결되지 못했지만 그냥 이렇게 흔적대로 남겨둔다.

by 골드문트 | 2009/10/20 22:13 | 넘실넘실 | 트랙백

진짜

진짜가 되고 싶었다. 직접 해보고 싶었다. 공모전에서 줄기차게 머리에서 새어나오는 대로 내뱉었던 것과, 실제 액션과의 차이.
'왜 이렇게 했지? 이리이리이리 하면 되잖아'
언어로 풀어내려진 것과 실제 현실로 이행되는 것에는 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한 Gap이 존재한다.

예전의 나는 그걸 '그런게 있겠거니' 라고 생각했었다.

레고로 치면 '비룡성' 매뉴얼 vs 다 만들어진 비룡성 그 자체

레고는 그나마 낫다 블럭들이 정해져 있으니.

현실세계에서는, 블럭에 색을 칠해야 하고, 쪼개거나 합쳐야 한다.
블럭이 없으면 찾아내야 한다. 
찾아도 없으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다시 뜯어내기도 하고 중간에 부숴지기도 하고 블라블라
레고라는 비유 자체가 웃긴 것이다. 이건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뭉텅뭉텅한 찰흙같아서, 세심한 손길과 끊임없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
살아 있는 유기체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 그 그림이 참 적합한 것 같다
언제가 통제가 불가능할만큼 커진 그를 보게 될 것이다. 뿌듯할 것이다. 창조주로서.  

이런 기회를 얻은 것에 이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누구에게?). 그냥 누구에게라도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락 일보 전까지 쓸려 내려왔다가도,
그 깊은 곳 바닥을 투웅 치고 올라가 다시 숨을 쉬는 그 느낌이 참 좋다.
언제나 100% activated는 어렵다. 내가 그걸 못하는데 남에게 기대해서는 안되지 않은가.
조금더 멀리보자. 조금 더 여유를 갖자. 이건 장기전이다. 한달 두달 하고 말 일이 아니다.

굉장히 많은 자양분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년 후에 돌이켜보면 나는 스펀지처럼 무언가를 흡흡 빨아들이고 있었구나 할 지도모른다. 평택의 한 시골 방안에서, 내또래 온갖 청춘들을 볼 수 있는 매장에서, 나의 친구들 그리고 동반자들에게서. 지금 아프고 쓰라리고 한 것들은 성장통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볍다. 순간 심각한 갈등들이 뒤돌아보면 그냥 그때 좀 기분나빴지 하고 말 것들이라 생각하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긴다. 그 여유가 왜 진작 생기지 않는지, 그릇이 이정도밖에 안되는지 한편으로는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기도 하다. 아직 그릇이 작다. 더 배워야 한다. 더 커야 한다.

동업자란 표현은 한정적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 '일 때문에' 같이 있는 사람들인 것만 같다. 그들이(그리고 내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커갔으면 한다. 삶을 같이 누렸으면 한다. 즐거운 일에 기뻐하고 안좋은 일에 슬퍼하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는 영혼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은 자기 앞가림도 서투르지만, 사회의 앞가림을 고민하는 삶을 '같이' 누렸으면 한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난 무엇을 원하는지. 아니 원하는 건 많은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매력적인 삶들은 많이 존재하고, 욕심 많은 난 항상 무언가를 놓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울 따름이다(정말 시간은 금인데 처져 있으면 안되는데).

귀납법식으로 말한다면, 여태까지 선택한 삶에 후회는 없었다 - 후회없도록 만들었으니까 - 그러니 앞으로도 후회없는 삶을 살게 될 거야 . 뭐가 튀어나올진 모르겠지만, 일단 가는 방향을 선택한다 - 무언가 재밌는게 나올 것 같으니까 - .
물음표 상자가 위에 떴는데 열어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면 쓰겠는가.

by 골드문트 | 2009/09/03 16:44 | 넘실넘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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