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사색

볼체어, 노라 존스, 새벽 1시.
예전엔 이런 것들을 즐겼던 것 같은데, 일에 치여 어느새 잊고 있었다.
사실 일에 치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통제력이 그만큼의 의지가 없는 것이겠지. 내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그 귀중한 것을 조금씩 조금씩 나눠  도피성 대안들에 뿌리고 있다.
What am I doing?
행복하니? 라고 물어보면, 난 불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행복할까? 라고 할 때 예전처럼 '응'이라고 무조건 반사로 나오는 대신, 1초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그건 분명 '변함'의 증거이리라. 그냥 모든 게 다 무던해졌기 때문일까. 좀 더 일차원적인 재미를 찾게 된다. 그것이 내 삶을 피폐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좀 더 높은 차원의 성취를 나는 좇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생각 없이 사는 삶을 동경해본다. 나는 이미 돌아가기엔 갈림길을 너무 많이 지나왔다. 질문을 던진다. 이게 맞을까? 이게 행복할까? 
형은 요즘 어떤지 모르겠다. C그룹  사람들을 보면, 성과가 꼭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뭔가 피폐해지는, 기 빨리는 기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는 발을 디디었는데, (쪼리가 남더라도) 다시 들어올리는 것이 묘안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의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신의에 대해서 생각하고, 일에 치열하지만 믿음이 있는 조직을 생각한다.
밖에서 바라보는 나에 의해 내가 규정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보다 나를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해해야 한다.

난 정녕 사람들을 품으려 하는 것인가? 그 앞에 '내가 좋아하는'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아닌가?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너무나도 이기적이지만 현실일 수도 있는)을 끌고 가야 한다는 뭐 그런 의무를, 짐을 진 것은 아닐까?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어느 선까지를 명확히 해야하는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은 달성하기 어려운 것인가. 

그냥 음악 듣고, 책읽고 밭을 가꾸고 하는 삶을 생각해본다. 분명히 내가 1년도 못 되어 때려치울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냥 생각만 해본다. ㅋㅋㅋㅋ

지금 나에게 필요한 스텝은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처방은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그냥 나를 책임져줄 누군가를 왜 구하지는 않는 것인가(그게 조직이든, 사람이든).

글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 것을 보니, 나도 어느덧 무게를 느끼고 있나 보다. 냉정히 생각하면, 두 가지중 하나여야 할 것이다. 감당할 수 있다면, 지고 열심히 해라. 그렇지 않으면 빨리 내려놓아라.
묵묵히 무언가를 계속 수행해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허나 너가 습관이 움직이는 삶을 가지고 싶다면, 고되되 그 끝은 값질 것이다.
몸에 배어 의식하지 않게 되면, 한없이 자유로운 삶. 지금 와서 무릎을 친다 어린 시절 난 한때 그 경지에 잠시 있었구나.
서른 살 마흔 살 내가 더 멋있으려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뇌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행'해야 한다.
그것이 스물 여덟살의 당신이 할 일이다. 서른 살의 내가 이 글을 보고 부끄럽지 않도록. 허허 이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독기있네 하며 웃음지을 수 있도록.

산만해지지 말자. 삶을 좀 더 단순화시키자. 리듬을 만들고, 그것을 잃지 않는다 - 언제나 진리는 단순해서 그게 다야 할 정도다.
필요한 건 의지. 지금 이 시간을 감사하게 여기어야 한다.

나는 왜 그것을 원하는가? 왜 절제된 삶을 원하는가? 어려운 길을 택하는가?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면(=번뇌한다면), 나의 수련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by 골드문트 | 2012/09/04 01:31 | 2012 | 트랙백

대인무기

大人無己

나를 버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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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은 결국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 마음도 내가 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마음도 없다(大人無己).


나를 버리는 것. 아직까지 나는 나를 버리지 못한다.

by 골드문트 | 2010/01/18 20:02 | 넘실넘실 | 트랙백

발코니

보스턴 리걸의 에피소드들은 항상 발코니 씬으로 끝을 맺는다. 자기 이름만 연신 외쳐대는 데니 크레인과 선과 악의 (자기) 구분이 뚜렷한 앨런 쇼어가 시가를 물고 위스키를 먹으며 에피소드를 정리하며 잔잔한 대화를 나눈다. 그 씬은 대부분의 사람들(특히 술과 담배를 사랑하는 남자들)에게 자극이자 욕망이라는 느낌이 든다. 바쁜 일을 끝내고 자신만의 시간을 동지와 나누는 여유.

그 씬을 볼 때마다 오픈 한달 차, 리츠칼튼으로 다같이 워크샵을 빙자한 뒷풀이를 갔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그게 언제더라? 9월 말이었나. 하늘이 보이는 발코니가 있었고, 그들과 함께 나란히 앉았을 때 그 기분이란. 지난 두세달 동안 바쁘게 보내왔던(그러나 옷걸이에 옷을 걸어 옷장에 넣는 것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지는 못했던) 시간들이 가슴 언저리에서 쑤욱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애인님이랑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그런 시간 - 한적한 여유 - 를 우리들과 다시 가지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 당시에는 워크샵이라는 스케쥴(?)에 걸려 맘 편히 쉬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예민해져서 사소한것 하나 하나에도 감정이 부딪히던 시기, - 지금은 그런 부딪힘에 서로 피로감을 한가득씩 안아 아예 찔러보려 하지도 않는 단계지만 - 엉킨 실타래를 싹둑 끊어내진 못했지만, 워크샵도 중간에 쓰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5분이나 되었으려나, 발코니에 앉아서 사실 건물 그리고 밤하늘 외에는(강남역에 뭐가 있겠나) 아무것도 없던 밖을 내다보던 그 찰나의 시간만으로 나에게 그 괴상한 1박2일은 가치있었다. 뭔가 뭉클했고, 행복했다. 그 포만감은 아직까지도 그 몸 한구석에 남아 있다. 진지한 대화가 오간 것도 아닌, 그냥 쿠션이 있는 비치의자에 누워 실없는 몇마디를 주고받고 별이 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가을 모기에 공격당해 방으로 후퇴한 시간이었는데. 그 모든 조합은(어쩌면 모기들마저) 성공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에 갈 때 숙소에도 발코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땐 꼭 가게를 넘어 나를, 너를 , 우리의 삶을 조망하리라. 머리아픈 일은 묻어두고 동지애를 마음껏 발휘해보리라. 푹 쉬고, 재충전하고, 뇌하수체 저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는 은밀한 생각들을 끄집어내고, 한데 뒤섞고 터뜨리고 날려보내리라. 나를 찾으리라. 

by 골드문트 | 2009/11/11 12:10 | 넘실넘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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